은혜&하나님

은혜 & 하나님 고린도전서 2:12~13

 

여러분, 은혜가 무엇입니까? 은혜 받았습니까? 은혜를 아는 사람과 은혜를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사는 신앙인과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어도 못 받은 것처럼 사는 신앙인도 있습니다. 제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모태신앙으로 목사까지 되었지만 큰 은혜를 받은 사람인데도 그것을 모르고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제게 참 말로 다 할 수 없는 고난이 왔습니다. 참담한 심정으로 하나님 앞에 고꾸라질 때 우리 주님의 성령님이 내게 오신 것을 깨닫게 되었고, 가난한 저의 마음에 성령의 기름부음이 임할 때 제일 먼저 알게 된 것은 바로 은혜였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은혜 말입니다. 새 힘과 기쁨이 밀려왔습니다. , 은혜의 하나님!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그리고 삶이 또 팍팍해지면서 점차 그 은혜의 기억은 희미해지고 즐거움도 메말라 가고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은혜를 잊어버리면 : 은혜를 알면

은혜 안에 산다는 이 분명한 사실이 우리 삶 속에서 희미해지기 시작하면 하나님께 뭔가 입증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찾아오기 시작합니다. 그저 아버지를 생각하며 기쁘고 아무런 부담이 없이 그 그늘 안에서 자유롭게 놀면서 즐거워하던 때가 언제인가요? 주님께서 수고하고 무거운 지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여기서 쉬다라는 말은 헬라어로 소생하다, 회복하다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은혜를 주시고, 은혜 안에 있는 나를 속속들이 되살아나고 생기 있게 해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실제로 우리 하나님은 저에게 그렇게 해 주셨습니다. 그때부터 나도 모르게 무뚝뚝하고 어둡던 제가 자유롭게 웃고, 나다워지고, 실수를 해도 크게 개의치 않게 되었습니다. 완벽주의적인 성격이 많이 듬성듬성해진 것이죠. 뭔가 해야만 한다는 일 중독 같은 강박증과 조급증도 조금씩 줄어들었습니다. 신기한 일입니다. 우리 아이들과 다른 사람들에게도 단속하고 지적하던 것을 많이 내려놓고 덮어주고 이해하고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을 내 맘대로, 내 손에 두려고 하던 습관들이 고쳐졌습니다. 상처 입은 사람들, 삶이 내 눈에 볼 때 단정해 보이지 않는 사람들, 내 기준으로 믿음이 없다고 여겨지는 사람들, 생활 방식이 나와 다른 사람들, 목회적으로 어려운 처지에 있는 친구들이나 선후배 목사님들을 볼 때 판단과 정죄가 아니라 저절로 긍휼의 마음이 흘러나오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영을 받으면 알게 됩니다. 내가 얼마나 불쌍한 사람이고, 그런 내가 얼마나 큰 은혜를 받았는지 말입니다.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12) 스스로 저 자신을 굉장히 닦달하며 살았었는데 그 일도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은혜를 체험하고 보니까 제가 참 완전하지 못한 사람이란 것이 보이고, 그래서 날마다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불쌍한 사람일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연적으로 나 자신과 또 아내나 아이들, 타인에 대한 기대치는 낮아지게 되었고, 그러자 역설적으로 하나님과 은혜에 대한 기대치는 더 높아졌습니다. 제 얼굴은 긍정적인 얼굴로 조금씩 바뀌었고 마음은 한결 가볍고 자유로워졌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많이 지나면서 조금씩 그런 모습들을 잃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지금까지 말씀드린 그 모든 일들과 변화에 대한 반대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최근 다시 깨닫게 되었습니다. 지금 내게 그리고 내가 목회하는 우리 교회에 가장 중요하고 필요한 것은 바로 은혜구나.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아는 은혜 말입니다. 은혜의 하나님을 다시 붙들고 그 은혜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구나. 아니 그분의 은혜를 구하는 것이구나.

 

긍정적인 얼굴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미 은혜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이는 너무나 분명한 사실이지 않나요? 그런데 은혜를 받았으나 그 은혜를 알고 누리고 살지 못한다면 이것은 소생케 하고 살리는 은혜가 아니라 죽은 은혜입니다. 내가 지금 아버지 은혜 안에서 자유롭게 살지 못한다면 큰일입니다. 빨리 알아채고 다시 은혜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리고 은혜가 얼굴에 나타나야 되겠습니다. 은혜 안에서 자유로운 사람의 얼굴은 밝아요. 긍정적인 에너지가 그 얼굴에 있습니다. 예수님의 얼굴도 그러하셨을 것입니다. 그분 주위에는 학식 있는 사람들, 종교적인 사람들, 긴 옷을 입고 의로우며 율법을 인용하는 성직자들이 아니다라는 얼굴로 둘러서 있었을 것인데 예수님의 생활은 이것에 조금도 물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주위 사람들이 얼굴을 찌푸리고 안돼!” 할 때에 주님은 된다!”고 선언하면서 새 마음, 새 종교를 시작하셨습니다. 우리 기독교는 그래서 긍정의 종교요 자유의 종교입니다. 바울은 이것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지 않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예 하고 아니라 함이 되지 아니하였으니 그에게는 예만 되었느니라.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고후 1:19-20) 어떻게 주님은 그렇게 하실 수 있었을까요? 은혜 안에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분 자신이 은혜의 본체이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너무나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셨습니다. 요한은 이것을 이렇게 증거 합니다.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더라.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니라”(1:16-17)

 

2. 강요인가 기쁨의 순종인가

모세의 율법은 결국 요구하고, 다스리고, 제한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시대 바리새인들은 모든 삶의 습관과 가치를 열정적으로 율법화 하여 사람들을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율법 아래서 사람들은 죄책감과 수치심으로 물들어 있었습니다. 책임과 외적인 행위에 몰두하며 옳고 그른 것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니 그 자체에는 강요만 있지 기쁨을 가질 여유는 없게 된 것입니다. 종교는 완전히 외적인 행위의 체계로 전락했습니다. 의무만 남은 종교가 유대교였습니다. 순종은 사랑이 그 동기가 되어 기쁨으로 하는 것인데, 그것이 아니라 지키느냐 아니냐 하는 엄격한 책임의 문제가 되어 버렸습니다. 순종 아니면 죄요 심판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요한의 선언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은혜와 진리가 사람들에게 나타나고 그것을 깨닫게 될 때에 오랫동안 기다려 왔던 내적인 변화(혁명)는 외적 형식의 종교에 매여 있던 사람들을 풀어놓기 시작했습니다. ‘죄책이라는 멍에 대신 새로운 동기로, 자발적 순종으로 진정 그분을 따르겠다는 기쁨과 헌신이 각 사람 마음에 자리 잡고 움직이게 했습니다. 진정 주님은 육체의 행위가 아니라 중심을 보시는 분입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긴 목록의 요구사항을 제시하시고, 엄포놓고 강요하며 감시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런 주님이시라면 우리는 결코 기쁨의 순종을 드릴 수가 없지 않겠습니까? 주님은 우리 안에 있는 겨자씨만 한 믿음을 보십니다. 믿음이 순종을 낳습니다. 반 하우스(Donald Barnhouse)라는 성경학자는 참 적절한 말을 했습니다. 위를 향한 사랑은 예배요, 바깥(이웃)을 향한 사랑은 자비요, 허리를 굽힌 사랑은 은혜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베푼다는 것은 자격도 능력도 없는 나에게 호의와 친절을 보이시는 것이고 내게 허리를 굽히시는 것입니다. 잊지 마십시오. 우리는 세상의 영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나를 구원하셔서 자신의 영을 부으신 아버지의 뜻은 그분의 은혜를 알아서 그 안에 그분과 함께 살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나는 이미 은혜를 받은 사람입니다. 모든 것이 은혜입니다. 은혜 아니면 살아갈 수가 없는 인생이 바로 나입니다. 여러분, 주님 은혜 안에서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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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2024-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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