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보혈의 능력 히브리서 9장 11-15절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주신 이름 ‘예수’를 찬미하고, 예수 그리스도 구원의 은혜를 날마다 상기하며 감사하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된 우리들에게 마땅한 일입니다. 진실로 예수의 십자가는 우리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크고 놀라우신 은혜입니다. 그것을 깨달아 알고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십자가가 구원의 유일한 은혜인 것은 우리 주 예수께서 그 십자가에 달려 흘리신 ‘보혈’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의 은혜는 보혈의 은혜요,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로 사는 권세 역시 보혈의 권세요, 죄와 죽음을 이기는 능력도 또한 보혈의 능력인 것입니다. 오늘 이열치열 여름부흥회를 앞두고, 성회를 통해 우리에게 주실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사모하기를, 그 통로가 되고 근거가 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생각하며 은혜 나누기를 원합니다.
죄를 도말하는 능력
성도 여러분, 우리가 예수를 믿는 다고 말할 때에 전제 조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내가 하나님 앞에 죄인이라는 인정과 고백입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죄인입니다. ‘罪人’ 이것이 나의 본질입니다. 죄에는 마땅히 죄값이 있습니다. 죄값은 심판이요 죽음입니다. 죽음으로 죄값을 치르면 끝이 아닙니다. 죽음 후에는 지옥의 형벌이 있습니다. 예수 보혈의 능력은 무엇입니까? 바로 이 죄값으로 부터의 해방입니다. 세상에 공짜란 없습니다. 죄값을 치루지 않고 죄로부터 벗어날 방도는 전혀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의 피가 필요합니다. 예수의 피는 인간의 피와 다릅니다. 인간의 피에도 도저히 매길 수 없는 값어치가 있지 않습니까? 피값은 목숨값입니다. 하물며 예수의 피에 값어치를 어떻게 매길까요?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가장 귀한 값어치가 바로 예수의 피입니다. 그래서 보혈(寶血)입니다. 하나님은 결단코 죄를 눈감아 주지 않으십니다. 죄에 대해서는 끝없이 분노하십니다. 그래서 끝까지 추적하십니다. 밝혀내십니다. 그리고 그 값을 반드시 치르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지엄하십니다. 그러므로 죄에 대한 하나님 아버지의 분노를 누그러뜨릴 수단이 우리에게는 필요합니다. 우리가 살기 위해서 필요합니다. 그것이 보혈입니다.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그렇습니다. 보혈은 나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분노를 누그러트리는 능력입니다. 유일한 수단이요 방법입니다. 죄값은 목숨값입니다. 죄값을 치루신 것이 보혈의 속죄입니다. 나의 죄값을 예수의 피값으로 치루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 값어치를 상상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보혈입니다. 보혈은 죄를 도말하는 능력입니다.
2. 양심을 깨끗하게 하는 능력
여러분, 양심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나에게 본래 심어 주신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선하신 분입니다. 그래서 양심은 사랑입니다. 선한 마음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이 양심이 죽었습니다. 아니 거의 죽은 것 같은 ‘코마(Coma)’상태에 빠졌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습니까? 죄 때문입니다. 죄는 어디서부터 나옵니까? 욕심입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약 1:15) 그랬습니다. ‘죄’라는 것이 내 핏속에 흐르는 욕심을 이용하여 내 양심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듯이 양심을 밀어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가려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원래 내 속에 있는 하나님의 마음을 모르고 삽니다. 욕심이 진짜요, 전부인 줄 압니다. 속은 것입니다. 마귀는 이렇게 음흉합니다. 가짜를 진짜로 둔갑시키는 재주가 있습니다. 재주꾼입니다. 넘어가지 않을 자가 없습니다. 그래서 보혈이 필요합니다.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을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보혈은 양심을 다시 살려내는 능력입니다. 인간의 본심, 창조주 하나님의 마음을 갖게 하는 능력입니다. 욕심을 물리치고 사랑을 다시 부어주시는 능력입니다. 그래서 선을 행하게 하시는 능력입니다. 죽을 행실에서 살리는 능력입니다.
3. 살아계신 하나님을 알고 섬기게 하는 능력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에서 해방되어 죽은 양심이 살아난 사람이 바로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들입니다. 이것은 이 세상의 그 무엇으로도 가당치도 않고, 가능치도 않은 일이고, 은혜 중에 은혜입니다. 양심이 살면 행실이 삽니다. 어떤 행실입니까? 죄를 깨끗하게 하시는 능력을 입기 전에는 양심도 죽어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모르는 불효자식으로 살았습니다. 죄가 부리는 욕심에 얽매인 사람의 당연한 모습입니다. 욕심에 빠지면 제 부모도 몰라봅니다. 부모의 마음은 안중에 없고 부모의 재산만 보입니다. 사람 구실 못하는 것이지요. 사람이라면 마땅히 제 부모의 마음을 알고 살피고, 부모에 은혜에 감사하면서 부모를 섬겨야 사람입니다. 그런데 욕심이 그런 선한 행실을 못하게 합니다. 그런 나에게 보혈의 은혜가 임했습니다. 보혈의 능력을 받았습니다. 이제 죽은 것 같은 양심이 살아납니다. 양심은 욕심과 싸워 이기게 합니다. 드디어 죄가 부리는 욕심의 귀신들을 물리칩니다. 그제서야 눈이 떠지는 것입니다. 눈꺼풀에 씌워져 있던 비늘이 벗겨진 것입니다. 죽을 행실이 달라집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알게 됩니다. 알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를 아버지로 섬기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이것이 바로 보혈의 능력입니다. 아버지를 섬기며 효를 다하니 삶이 보람되고 기쁩니다.
사람같이 살게 되니 행복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니 만족합니다. 그리고 섬기는 아버지께서 기쁘게 주시는 은혜와 복을 누립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 보혈의 능력인 것입니다. 죄에서 건지시는 능력, 죽은 양심을 살리시는 능력, 살아계신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며 섬기는 능력. 이것은 내 능력이 아닙니다. 보혈의 능력입니다. 우리는 이 능력을 받은 능력자입니다. 이 능력은 오직 예수의 피로만 나에게 임하는 것입니다. 예수의 보혈을 대체할 만한 것은 전혀 없습니다. 그래서 오직 예수입니다. 오직 예수의 보혈입니다. 오직 예수의 은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