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예수 십자가
고린도전서 1:10-25
이전에 비추어 지금 신앙인들의 모습이 형식적이고 습관적이라는 말을 합니다. 열정도 예전만 못하다고 합니다. 사회에서 그리스도인들의 영향력도 많이 줄어들고 있다는 지적도 뼈아픕니다. 왜 그럴까요? 그 이유를 ‘십자가 신앙’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십자가 신앙이 변질되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는 기독교의 중심(초점)입니다. 초점이 흐려지면 방향도 그렇게 됩니다. 예수 십자가의 의미가 퇴색되고 가려져 있는 것은 아닌지요. 예수님 시대에 십자가는 수치와 저주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경험한 제자들은 너무나도 뚜렷한 십자가 사건을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 영광의 주님을 만나고 그분이 약속한 성령을 체험한 제자들은 최악의 상황, 저주와 수치의 자리에서 가장 영광스럽고 선한 일을 보이신 예수를 용기 내어 자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야말로 십자가의 반전이었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난 제자들의 충격은 십자가를 재해석하기 시작했습니다. 십자가에 매달렸다는 것이 그처럼 비참하고 창피한 일이 아니구나. 십자가의 죽음이 그저 저주스러운 죽음이 아니었구나. 십자가에 달렸어도, 선을 드러내고 영광을 나타낼 수 있구나. 십자가에 능력이 있구나! 이것은 놀라운 깨달음이었습니다. 그 후로 제자들에게 십자가는 빛이었습니다. 능력을 나타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들뿐만 아니라 주위에 있던 사람들까지 십자가의 의미와 능력이 전달되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십자가 이외에는 아무것도 알기를 원하지 않는다”(고전 2:2) 바울의 이 고백처럼 초대교회 성도들은 그들의 모든 모임과 설교와 예배와 기도와 성만찬의 중심에 십자가를 놓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중심성’입니다. 실로 기독교 신앙은 십자가 신앙이라 할 수 있습니다. 죽은 것처럼 보이던 나무가 되살아나는 것처럼 십자가는 그리스도인들의 삶 속에서, 교회에서 살아나기 시작했습니다. 꿈틀거리며 열매 맺기 시작했습니다. 엄청난 능력과 기적이 십자가를 통해 일어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오래가면 낡아지고 변형됩니다. 십자가가 그 자체로 능력이고, 복음이 사람을 살리고 변화시켰는데, 교회가 제도화하고 형식화하면서 십자가의 능력과 복음은 사라져간 것입니다. 십자가는 분명히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데 말입니다. 이에 반대하여 개혁의 기치를 걸고 일어난 위대한 사람이 바로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입니다. 그가 들고나온 것의 핵심은 바로 “복음, 즉 십자가로 돌아가자” 였습니다. 십자가 신학이 회복되기 시작했습니다. 본질을 회복한 것입니다. 되살아난 십자가 신앙으로 종교개혁은 열매를 맺게 되었고, 그 뒤를 이어 칼빈, 쯔빙글리, 웨슬리 같은 위대한 복음의 사람들이, 십자가의 사람들과 교회들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의 능력입니다.
성도 여러분, 그리므로 우리가 지금 주목하고 붙들어야 하는 것은 ‘십자가 신앙’입니다. 건물을 크게 짓는 것도, 선교지를 확대하는 것도, 사회사업에 힘쓰는 것도 아닙니다. 단순한 복음, 십자가 신앙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능력을 믿는 일입니다. 십자가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거듭남, 회개의 은혜, 치유되고 새로워짐, 그리고 기쁨의 능력. 과연 나의 믿음에는 그 중심에 십자가가 있는가? 십자가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죄로부터의 승리, 자유와 기쁨. 우리의 기도에, 그리고 헌신과 봉사에 과연 십자가가 있는가? 지금 우리가 회복해야 하는 것이 바로 십자가의 중심성 아닐까요? 고난주간에 우리가 더욱 힘써 기도하며 묵상해야 할 일은 십자가 신앙이 아닐까요?
사람들이 십자가를 위해 모였는데 십자가가 보이지 않은 때가 있었습니다. 바로 초대교회, 고린도 교회였습니다. 십자가를 놓고 방황하는 교회에는 분쟁이 있었습니다.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10절) 십자가가 없으면 그 자리를 기막히게 알고 마귀는 분쟁의 영으로 비집고 들어옵니다. 생생한 성령공동체였던 고린도 교회에도, 바울이 담임목사였던 고린도 교회에도 십자가의 중심성이 흔들릴 때 파벌싸움으로 쪼개졌습니다. 바울은 이런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외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라”(17절)
십자가는 사상이나 이념으로 알 수 없습니다. 인간의 지혜와 논리로도 설명할 수 없습니다. 성령 받은 사람만이 알 수 있습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18절)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로만 우리는 능력의 십자가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말씀으로부터 옵니다. 말씀이 전파되고 선포될 때 드러나는 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다”(21절)
기적을 구하고 지혜를 찾는 사람들은 방황할 수밖에 없지만, 예수의 사람들은 십자가를 붙들고 흔들리지 않습니다. 예수 신앙은 십자가 신앙입니다. 십자가가 무엇입니까? 그저 나뭇조각입니까? 예쁜 팬던트 디자인입니까? 십자가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 자신입니다. 십자가는 분명 수치이지만 그 나무에 매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는 영광의 주입니다. 십자가는 치욕적인 사형틀이지만 십자가에서 죄없이 순결하게 피흘리시고 사형당하신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구원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십자가를 자랑합니다.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23-24절) 오직 예수, 예수가 답입니다. 오직 십자가, 십자가가 능력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