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고 기다리는 것

누가복음 강해 8

바라고 기다리는 것 누가복음 3:15-20

 

여러분, 오늘 여러분은 무엇을 바라고 사십니까? 무엇을 기다립니까? 예수님 시대의 사람들이 바라고 기다리는 것이 있었습니다. 메시야였습니다. 왜 메시야를 기다렸을까요? 이 세상이 너무 악하고 삶이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세상에 아무런 소망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어떻습니까?

 

15-16: 평범 속에 비범이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와 똑같은 모습으로 오셨지만(평범), 가만히 주님을 바라보면 그 속에 아버지 하나님의 형상이 계십니다(비범). 오늘 예배하는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형상이 나타나는 비범함이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을 보면 볼수록 하나님이 더 크게 보이는 것처럼, 내 속에서도 아버지의 성품이 더 크게 나타나게 하소서! 사람들은 세례요한과 예수님을 혼동했습니다. 세례요한이란 사람이 옷도 희한하게 입고, 말도 직설적이고 강하게 하고, 세례와 기적을 베푸니까 사람들은 그를 주목했습니다. 세례요한은 본의 아니게 세간의 주목을 끌고, 그를 메시야라고 칭송하며 따르는 무리가 많아진 것입니다. 그러나 세례요한은 세상 인기에 휩쓸리지 않았습니다. 자기 분수를 잃어버리지도 않았습니다. 끝까지 겸손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이런 말은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은 나보다 능력이 많은 분이다.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기에도 벅찬,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다.” 누가 날 치켜세우고 칭찬하면 긍정도 부인도 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냥 씨익 웃고 말아요. 그속에 교만의 그늘이 있는 것이고, 거짓이 한 자리를 깔고 앉을 채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확실하게 부인해야 합니다. 단호하게 교만과 거짓의 영을 꾸짖고 물리쳐야 합니다. 나는 죄인입니다. 나는 주님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확실히 자각하며 고백해야 합니다. 은혜는 바로 거기서부터 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아무리 나에게 부와 명예와 건강과 축복을 주셨어도, 아무리 나를 높은 자리에 올려 놓아도, 나는 그리스도가 아닙니다. 나는 죄인입니다. 나는 실수할 수밖에 없는 연약한 사람입니다. 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주여 나를 도우소서. 이렇게 겸손하고 진실된 고백이 있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세례요한이었고, 그 사람이 바로 여러분 자신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우리는 또한 16절에서 세례요한이라는 사람의 내면적 자세, 마음의 태도를 읽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 아부하는 모습입니다. 아부도 자꾸 하다 보면 충성이 됩니다. 세례요한은 오직 주님께만 충성한 것입니다. 여러분, 무슨 일을 만나든지, 어떤 경우에 처하든지 무조건 주님을 찬양하세요. 무조건 주님이 좋다고 고백해 보세요. 내 영적 상태가 거기까지 성숙하지 못한 것 같더라도 무조건 주님 편에 서서 주님이 내게 행하시는 모든 일을 받아들여 보세요. 그리고 기꺼이 주님의 모든 처분을 달게 받고 감사해 보세요. 모든 영광을 주님께 돌려 보세요. 모든 예배와 찬송과 칭송은 주님이 받으셔야 합니다. 한번 오늘 아침 이런 다짐을 해 보세요.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예수 그리스도, 내 주님만 좋아하며 살리라. 그분만 바라고 의지하고 살리라. 주님만 찬송하며 기뻐하고 살리라. 아멘.

여러분, 말끝마다 주님을 찬양하고 삽시다. 예수님 이름을 높이며 삽시다. 주님의 이름을 부르세요. “주여, 주여, 주여...” 예수님의 이름이 내 맘에서 샘솟듯 솟아나서 내 입 밖으로 나와야 해요. 주님의 얼굴이 내 얼굴에 나타나야 합니다. 예수여, 예수여, 나의 주님이시여. 내가 주님을 사랑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기뻐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찬양합니다. ‘주 없이 살 수 없네, 죄인의 구주여’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 예수는 주 예수는 주’ ‘예수 가장 귀한 그이름이렇게 순간순간 우리는 세례요한처럼 외쳐야 합니다. 나의 주님을 향해 찬양을 올려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고백합시다. 나는 그분의 신발끈 하나도 풀기에 벅찬 사람이다. 나는 그분으로 인해 산다. 내 삶의 이유와 목적은 그분 때문이다. 우리는 주님께로부터 내려오는 불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그분의 능력으로 사는 것이 영생의 길입니다. 아버지 영광을 드러내고 아버지의 영광에 참여하는 길입니다.

 

20: 하지만 성도 여러분, 우리가 한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세례요한의 마지막 모습입니다. “그 위에 한 가지 악을 더하여 요한을 옥에 가두니라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삶에는 반드시 핍박도 온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재수 없는 일도 아니요, 의미 없는 고난도 아닙니다. 그것은 반드시 심판이 따르는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그래서 복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이 땅에서의 고난은 어쩌면 그리스도인의 면류관이요 상징입니다. 어쩌면 우리에게 아무런 고난이 없는 것이 문제일지 모릅니다. 나는 예수를 위해 한번도 욕을 먹어본 적이 없고 손해본 적도 없으며 아까운 내 것을 내어놓은 적도 없다? 이것이 오히려 불행한 일이 아닐까요? 주님을 위해 살면서 주님을 위해 내 것이라 여기는 것을 드리고, 주님을 위해 당하는 고난에는 반드시 영생과 영광의 상이 있다는 것을 굳게 믿고 오직 주님을 위해 살아가는 하늘문 가족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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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관리자

등록일2023-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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